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> > > 공공 그랜트는 돈을 배분하는 제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제도이다. > > 요즘 정부 그랜트 현장을 보면 가끔 묘한 장면이 떠오른다. > 몇 달 동안 제안자는 밤을 새워 수십 페이지를 쓰고, 기관장은 도장을 찍고, 공동연구자는 역할을 나누고, 행정팀은 서류를 맞추고, 모두가 긴장 속에 발표장에 들어간다. > 그런데 정작 그 제안의 운명은 10분 남짓한 발표와 몇 개의 짧은 질문으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. > 마치 정밀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데려갔더니, 의사가 문 앞에서 맥박만 한번 짚어보고 “다음 분 들어오세요”라고 말하는 느낌이다. 아니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벽보에서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는 정도의 느낌. > 이쯤 되면 평가라기보다 통과 의례이고, 심사라기보다 일정 소화에 가깝다. > > 물론 정부 그랜토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. > 과제는 많고, 예산은 제한되어 있고, 담당자는 바쁘고, 평가위원 섭외는 어렵고, 일정은 촉박하다는 것이다. > 다 맞는 말이다. 현재 주어진 연구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공감한다. > 그러나 공공 자금의 배분에서 바쁨은 사유가 될 수 있어도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. > > 정부 그랜트는 본질적으로 ‘돈 나눠주는 일’이 아니다. > 그것은 국가가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지, 어떤 역량을 장려하는지, 어떤 실패는 감수하고 어떤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지를 사회에 신호로 보내는 일이다. > 그래서 그랜토의 책임은 행정 처리의 속도가 아니라, 판단의 질과 설명의 품격으로 측정되어야 하는 것이다. > > 좋은 그랜토는 공고문부터 다르다. > 무엇을 원하는지, 무엇을 우대하는지, 무엇이 탈락 사유가 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. > 반대로 좋지 않은 그랜토는 공고문을 안개처럼 써놓고, 평가는 안개 속에서 하고, 결과는 한 줄로 통보하는 것이다. > 제안자는 연구자이지 점쟁이가 아닌데, 자꾸 숨은 의도를 맞히라고 하면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추측 게임이 되는 것이다. > > 평가위원 구성도 마찬가지이다. > 이 과제가 기술 중심인지, 정책 중심인지, 현장 적용형인지, 사업화 연계형인지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. > 그런데 현실에서는 종종 ‘그나마 섭외 가능한 사람’이 ‘가장 적합한 사람’을 대신하는 순간이 생긴다. > 이때부터 평가는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용성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. > 심사위원 풀이 좁다는 말은 이해되지만,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상충 관리와 전문성 매칭을 더 치열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. > > 발표평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. > 짧을 수는 있다. > 현실은 늘 이상보다 짧고, 예산보다 일정이 먼저 무너지는 법이다. > 그러나 시간이 짧다고 해서 질문까지 얕아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. > > 핵심 가설이 무엇인지, 실현 경로가 무엇인지, 실패 가능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, 팀이 실제로 해낼 역량이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. > 그런데 때로는 “예산 집행 가능합니까”, “기대효과는 무엇입니까”, “차별성은 있습니까” 같은 교과서적 질문 몇 개 던지고 끝나는 경우가 있다. > 이런 질문은 나쁜 질문은 아니지만, 그것만으로는 좋은 제안서와 그럴듯한 제안서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다. > > 그리고 가장 아쉬운 것은 피드백이다. > 탈락은 괜찮다. > 경쟁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이다. > 문제는 왜 떨어졌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. > 강점은 무엇이었는지, 약점은 무엇이었는지, 다음에 보완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조차 남지 않으면, 평가는 선발은 했을지 몰라도 학습은 만들지 못한 것이다. > 피드백 없는 평가는 판정은 될 수 있어도 교육은 될 수 없는 것이다. > > 공공 그랜트 생태계는 결국 학습 생태계이어야 한다. > > 선정된 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, 떨어진 팀도 배워야 제도의 전체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. > 그래야 다음 공고에서 더 좋은 제안이 나오고, 더 좋은 제안이 나와야 더 좋은 연구가 생기고, 더 좋은 연구가 쌓여야 결국 국민의 세금이 제값을 하게 되는 것이다. > 그런데 결과 통보가 '탈락” 한 줄이면, 그 순간 제도는 연구자의 시간을 소비했을 뿐 역량은 키우지 못한 셈이다. > > 이의제기 절차도 종종 묘한 장식품처럼 보인다. > 유리문은 있는데 손잡이가 안쪽에만 달린 문 같은 것이다. > 형식상 길은 열려 있지만, 실제로는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다. > 절차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, 그 제기가 감정적 불복이 아니라 제도 개선의 자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. > 책임 있는 그랜토는 불만을 귀찮아하지 않고, 불만 속에서 제도의 허점을 읽어내는 것이다. > > 결국 좋은 정부 그랜토는 “우리는 바쁘다”라고 말하는 기관이 아니라, “우리는 설명할 수 있다”라고 말할 수 있는 기관이다. > 공고를 명확히 하고, 평가를 일관되게 하고, 질문을 깊게 하고, 근거를 기록하고, 결과를 납득 가능하게 통보하고, 다음 제도에 환류시키는 것, 이것이 바로 공공 그랜트의 accountability인 것이다. > > 정부 그랜트의 품격은 선정률에 있지 않다. > 심사장의 크기에 있지도 않다. > 그 품격은 탈락한 사람조차 “적어도 왜 떨어졌는지는 알겠다”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. > > 발표는 10분일 수 있다. > 그러나 책임까지 10분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. > > 그랜토들은 준비가 안되면 급히 공고를 하기 전에 숨을 한번 고르고, 아래 제시한 정부 그랜토 Accountability 10계명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. > 1.공고는 모호하지 않아야 한다. > 2.평가기준은 공고문과 실제 심사에서 같아야 한다. > 3.평가위원은 과제와 맞아야 한다. > 4.이해상충은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. > 5.충분히 읽고 평가해야 한다. > 6.질문은 본질을 겨냥해야 한다. > 7.판단의 근거는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. > 8.결과는 납득 가능하게 통보해야 한다. > 9.이의제기는 형식이 아니라 권리이어야 한다. > 10.평가는 끝이 아니라 학습이어야 한다. > > > hashtag#Grant hashtag#GrantProposal hashtag#정부RND hashtag#평가책임 hashtag#Accountability hashtag#연구개발 hashtag#공공자금 hashtag#심사 hashtag#Feedback > 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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